썰) 유명한 1세대 유튜버와 만났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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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강남역 가로수에 갈색잎들 나폴히 떨어지던 가을. 벌써 오년 넘게 흘렀던가...
어떠한 경로로 구독 1만이상 유튜버 십수명의 번개 모임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천하의 구글이 하는 일처리도 참 즉흥적인 면이 많았지...
여러가지 색다른 시도들도 있었고. 아예 유튜버 네트워킹 목적의 카페를 만들기도 했었다.
미국식 무료 커피값에 나름 고급스러운 다과들도 준비되어 있었으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
커피잔 앞에두고 둘러 앉은 자리에서 유독 어느 상기 되었던 표정의 청년이 기억난다.
당시 3x만 구독자 정도 였고 월간 8백만원 (그나마 그것도 피크때의)이상을 번다고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자랑이 그리 보기 싫지 않았다. 나만 그렇진 않았으리라.
새로운 미디어플랫폼의 주인공으로서 가장 먼저 메이플라워호에 올라탄 사람들 끼리의 묘한 동질감이 있었고
다음 8백만원을 버는 차례는 바로 내가 될것이라는 확신 역시 있었다.
청년은 다소 흥분된 어조로 계속 지껄여 댔고
어린 생각이 많이 엿보였으나 열정과 자부심을 자리에 참석한 모두에게 나눠주고자 애쓰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래. 그때는 뭐 하나의 사소한 팁이라도 유튜버끼리 공유하고 싶어했었지.
다시 생각해보아도 아름다웠었다. 작금의 분위기와는 정말 달랐다.
지금이야 팔백만원은 십만이 안된 유튜버도 벌어 들이겠지만
그때 당시의 평균적인 cpm은 0.5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팔백만원이 큰 돈은 큰 돈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대도서관님 처럼 유튜브로 돈을 벌수 있다니.'그 부분이 중요했던거 같다
엄청난 돈은 아니지만 또래 직장인들보다는 상당한 고액이었고
좋아하는 작업으로 윤택함까지 얻을 수 있으니 감동 아니할 수 없으리라.
벌어들이는 돈의 양이야말로 가장 쉽게 자부심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또한 세금 내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도 수십만 구독자로 이뤄지는 트래픽에 기반한 인지도는 존재 했었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주로 어린)유저들이 알아본다고 좋아하기도, 또한 곤란해 하기도 했었다.
모임의 누군가가 말했었다.
그저 나는 좋아하는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일반인일 뿐이고
길거리에서 싸인하고 하는것은 좀 이상하다는. 그런 발언이었는데
현 시점에선 잘 이해가 안가겠지만 당시엔 자리에 앉은 모두가 공감하였다.
"아 저도 그래요 갑자기 지하철타는데 어느분이 유튜브에서 봤다고 인사하셔서 너무 놀래서 깔깔깔."
우린 그냥 일반인들인데 싸인하고 다녀도 되는것일까?
연예인이나 되어야 싸인하고 다니는거 아닐까?
커피 한모금 넘기며 수줍은 표정으로 셀카 정도는 굳이 원하시면 같이 찍어드린다고 말했었던것 같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고
광고매니지먼트에 목매는 mcn과 구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것이 있었으니.
개약된 파트너들에게 스타의 자부심을 입히길 원했다.
그래야 기업들에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고
얼굴 파는 유튜버들을 미끼 삼아 더 많은 하꼬들을 유튜브 판에 끌어 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으리라.
모임 이후로 얼마 되지 않아 대규모 유튜버 팬이벤트들을 정기 개최하게 된다.
과연 tv나 영화 스타가 아닌 유튜버를 보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일까?
많은 실무자와 유튜버들 역시 걱정했지만 결과는 수만의 팬이 유튜버를 보기위해 모인 장관이 펼쳐졌다.
팬들의 환호속에 무대위에 오르는 감격이야 세상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지.
첫 무대의 환호에 왈칵 눈물을 쏟은 유튜버가 많았었다.
숫자에 불과하던 구독자 몇십만은 무대에서 실체가 된 순간 나는 몇십만의 친구가 있다로 바뀌었다.
그 이후론 싸인들을 보다 맘편히 하게된듯 하다.
유명 유튜버 외제차엔 의례히 싸인전용 마커들도 하나씩 들어가 있게 되었다.
다시 커피잔 앞으로 돌아가 보면 유튜브로 하고 싶은것이 참 많았었던 기억이다.
지금이라면 경쟁자에게 노출될까 걱정될 비전들을 아낌없이 공유했었다.
아니 경쟁자랄것이 그닥 없었다.
사막에 홀로 피어난 풀 한포기는 새롭게 자랄 새싹이 반가울 뿐 빗방울이 나뉠까 걱정하지 않으리라.
잔에 커피가 3번쯤 더 채워졌던가.
자리를 옮겨가며 지하철이 걱정될 시간까지 이야기를 이어 나갔고.
가장 어렸던 친구는 자기 유튜브에 올린다고 즉석에서 유튜버 모임 영상을 찍었다.
아 얼마나 새롭고 참신한가. 이것이 뉴 미디어. 모임 자리의 잡담 마저 컨텐츠다!
(그러나 모임 몇일 후 그 어린 친구의 채널에 가서 확인해보니 조회수는 얼마 나오지 않았다)
대도서관과 커피마신 영상만 올려도 조회수가 잘 나올것이라 생각할 수 있던 순진한 시절.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에 올릴 단체샷을 찍고 즐겁게 자리를 파했다.
서로서로 xx님 채널 너무 잘보고 있어요 계속 기대할게요
입에 발린 인사들을 뱉어냈지만 굳이 다 알면서 따지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3x만 청년의 유튜브를 구독 하지는 않은 이유는. 단순하게도 내 취향과 너무 달랐음이라
시간이 많이 지나고 올초 우연히 생각나 다시 그 청년의 (아니 이젠 청년이라 칭하기도 어려우리라.)
채널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꿈 많던 계획은 모두 어디론가 가고 현실에 지친 아재가
자기복제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만 단칸방 방송환경이 넓은 아파트로 바뀌었을 뿐이로구나.
메이플라워에서 하선한 사람들을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프다.
종교박해를 피해온 신대륙. 새롭게 펼쳐진 끝없는 평원이 눈 앞에 있었지만
결국 이상향은 한 없이 멀었고 도망친곳과 똑같은 사회를 만들어 서로 경쟁하고 살육하였다.
아는것이 감자 농사밖에 없는 농부는 새로운 땅에서도 결국 똑같은 감자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었음이라.
그래 분명히 몇 있었다. 정말 꿈꿔왔던 이상향으로 타협 없이 발걸음 뚜벅뚜벅 옮기던 사람들을 나는 기억한다.
글 읽는 그대여 그들의 근황이 궁금하거든 외로이 평원을 걸어보오. 외진 들판의 시체로 변해 있는 것 마주하거든
품안을 뒤져 유언장을 찾을 수 있을것이오.
'화무십일홍. 유튜브로 번 돈으로 컨텐츠에 투자한다 깝치지 말고 아파트 부터 사라'
그래도 당시 나눴던 희망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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